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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사람의 품격

기사승인 2017.10.12  13:4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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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천(吐天) 장이랑의 동양학 산책]

   
▲ 동양학자
옛날 어떤 바라문이 있었다. 총명하고 재주가 있어서 못 하는 일이 없었다. 그는 스스로 맹세했다. ‘한 가지 재주라도 능하지 못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은 천재가 아니다. 나는 천하의 기술을 두루 통달해서 이름을 세계에 떨치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사방으로 유학해서 인간의 일이란 모조리 통달한 뒤 천하를 두루 돌아다녔지만 누구도 감히 재주로는 그에 맞서지 못했다. 이를 본 부처님이 그를 교화시키기 위해 중의 모습으로 그에게 가셨다. 그때 바라문이 물었다. “그대는 어떤 사람이기에 행색이 보통사람과 다른가?” 부처님은 대답하셨다. “나는 나 자신을 다루는 사람이다”하시고 곧 부처의 공덕을 찬미하는 교훈을 들려주셨다. 바라문은 곧 몸을 땅에 엎드려 예배하고 몸 다루는 법을 물었다.

착하고 약함을 자세히 살피고, 피해야 할 일을 마음으로 알아 그것을 두려워 범하지 않으면 마침내 걱정은 없어지니 그 길을 알려 주는 친구를 만나거든 그를 따라야 한다. 이런 사람을 짝으로 할 때 복락은 갈수록 끝없이 이어진다고 했다. 밤낮을 부지런히 힘써 굳세게 계를 지켜 착한 사람을 공경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러나 악한 사람을 깊이 헤아려서는 안 된다. 이를 어길 경우에는 두려움은 영원하다. 복락을 기다리는 한 기회는 달아나고 만다. 일상에서 부딪쳐 보고 경험해 보면 부처님의 교훈이 살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악한 사람과 짝하지 말고 어리석은 사람과 짝하지 말아야 한다. 착한 친구를 따르고 뛰어난 선비를 친구로 두어야 한다.

부처님의 뜻을 그대로 전하거나 아니면 따르지 않아 겪게 되는 실패도 하나의 의미를 가진 철학이 될 수 있다. 그것은 인생의 뒷문을 엿보는 듯한 또 다른 깨우침이 될 수 있지만, 계를 벗어나면 인간의 심장을 쏘는 응징의 화살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그것을 가까이하기 바라지만 두려워하기도 한다. 법계 안에서 즐기면서 지키면 언제나 편안하다. 그 마음은 기쁘고 뜻은 깨끗하다. 어진 사람은 성인의 법을 들어 그것을 항상 즐겁게 행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인간을 편안한 상태로 보살펴 주는 것이다. 이 보살피는 것은 단순하거나 소극적인 관념이 아니다. 그것은 자연적 흐름에 부합하기 위한 노력일 뿐만 아니라 사물도 자연에 맞게 보살펴 주는 것이다. 활 만드는 사람은 화살을 다루며, 물길을 만드는 사람은 물을 이끌고, 목수는 나무를 다루듯이 지혜 있는 사람은 자기를 다룰 줄 아는 것이다. 자율적인 도덕관념이 결핍될 때 제재적인 법의 타율에 지배당한다. 그 법률마저 힘이 없어질 때는 또 다른 법률이 생겨나서 제재를 가하는 것이 세상 이치다.

아무리 바람이 불어도 반석은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어진 사람은 뜻이 굳세어 어떤 비방과 칭찬 속에서도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웃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에너지를 낭비하고, 또 친구들의 교연·영색을 즐기기 위해서 헛된 시간을 낭비하며 산다는 것이다. 깊은 못은 맑고 고요해 파문에 흐리지 않는 것처럼 지혜 있는 사람은 도를 지켜 그 마음이 즐겁고 편안하다. 항구에 있는 배는 언제나 편안하다. 그러나 배는 언제나 항구에 매여 있기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진선미도 자신에게 있어서만 진선미가 되는 것이지 남을 위한 것이 아니다. 자기를 속이는 것은 부처와 귀신을 속이는 것이다. 평판과 칭찬만을 제일의 행복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저주 또한 받을 사람이다.

대인은 세상일에 빠지지 않아 자손·재물·토지를 바라지 않고 항상 계와 지혜와 도를 지키며 그릇된 부귀를 욕심내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사람들은 부귀나 명예에 빠져 있을 때만 비로소 명사가 되는 것 같은 착각에 든다. 세상은 모두 욕심에 빠져 피안과 열반에 이르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혹 그런 사람이 있어서 마음을 가졌어도 그 언저리에서만 헤매고 있는 정도이다. 우리의 이상이 현실을 부인할수록 현실에 알맞은 우리의 수단이 있어야 한다. 진실로 도를 아는 사람은 바른 가르침을 받아 행한다. 생사의 세계를 건너기 어려워도 계를 지킴으로서 피안에 이를 수 있으므로 계를 구하면서 살아가는 마음은 행복한 것이다. 거기에는 노력이 있고 빛나는 침묵이 있으며 열정과 냉정이 있고, 나쁜 생각에서 구제되어 다른 것에 섞이지 않는 것이 있다.

지혜 있는 사람은 어두운 법을 떠나 고요히 착한 법을 생각하므로 집을 떠나 멀리 숲속으로 들어가 즐기기 어려운 고독을 맛본다. 외롭고 쓸쓸함은 지금껏 눈물과 감상을 준다고 여기지만 외롭고 쓸쓸함이 결코 허물이 아니다. 외롭고 쓸쓸함이 가진 아름다움과 향기와 힘을 내가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혜 있는 사람은 욕심을 버려서 한 가지 물건도 가지지 않고 스스로 자기를 깨끗이 하여 모든 번뇌를 지혜로 돌이킨다.

행복은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깨끗한 영혼에만 행복은 깃든다. 마음은 바른 지혜를 따르고 뜻은 항상 도를 생각해야 된다. 오로지 한 마음으로 진리를 알아 집착을 버림으로써 즐거움을 삼으면 마음의 때가 씻기고 식견을 갖추면 열반에 들게 되는 것이다. 극락이 어디 있겠는가? 그것은 방향도 없고 공간도 없으며 실제로 볼 수도 없는 것이다. 그것은 어둠의 고뇌 속을 파고들어 지옥을 지나면 극락은 느끼게 되는 것이다. 바로 시련 속에 희망을 발견하면 그것이 바로 극락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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