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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스 칼럼] 거리가 사라진 거리

기사승인 2020.03.08  15:3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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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보경 시인
   
 ▲ 한보경 시인


‘사회적 거리두기’를 권하는 사회다. 우리에게 닥친 정체불명의 질병 앞에는 신종이라는 수식어가 덤처럼 붙어 있다. ‘신종’이 지닌 의미에 이렇게 강한 거부감이 드는 것도 처음 겪는 일이다.

사회적 동물이라는 인간에게 ‘사회적 거리두기’를 권하는 현실이 너무 지나친 밀착과 무리짓기를 경고하는 것이라면 새겨들을 만하다. 그러나 신종 역병의 방역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대안이라니 좋아하는 것을 억지로 할 수 없게 된 낭패감이 먼저 든다. 오히려 지금은 어느 때보다 위로와 안부와 도움이 필요한 시간이 아닌가.

어느 날 갑자기 대구는 모든 관계의 거리두기를 넘어 ‘거리가 사라진 거리’가 되었다. 대구에 남아 힘든 시간을 버티는 많은 사람들은 자발적인 거리두기를 지키며 역병와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다른 지역에 사는 자녀에게조차 대구에는 얼씬도 말라하고 대구를 한사코 벗어나지 않겠다는 대구의 상황이 안타까움을 넘어 비극으로 다가온다. 당분간 대한민국은 서로의 거리가 사라진 거리에서 거대한 마스크로 스스로를 봉인한 채 견뎌야 한다. 바이러스보다 더 두려운 세상이다.

사물이든 사람이든 서로를 적절하게 지킬 수 있는, 그래서 그 편안함이 가장 오래 지속 될 수 있는 거리는 어디까지일까. 그 적절함의 간극을 유지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엎어지고 포개지듯 밀착된 거리는 자칫 한꺼번에 무너지고 깨어져 깊은 상처를 남길 수도 있다. 바라볼 수 없게 먼 거리는 서로를 향한 집중력을 떨어뜨려 관계의 끈이 끊어질 수도 있다. 가장 적절하고 아름다운 거리를 재는 일, 그 자체도 어떤 의도를 품은 선긋기처럼 조심스럽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는 서로의 안녕을 지킬 수 있는 적절한 거리지킴이 꼭 필요하다.

토요일 아침 해운대 동백섬을 돌고 왔다. 성수기가 아닌 계절도 해운대의 모든 거리란 거리는 거의 포화상태다. 해운대에 살면서 늘 해운대를 벗어나고 싶었던 이유 중에 해운대가 가진 넘치는 풍요가 부담스럽던 탓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붐비던 거리들이 텅 비어있다. 거리 자체가 사라진 듯 했다. 신종이 덮친 신종의 현장 같다. 까마득한 과거의 흑백 사진처럼 표정을 잃은 거리는 섬뜩하기도 하다. 이런저런 소요들이 출렁출렁 넘치던 거리에는 억지로 끌려온 고요가 고개를 숙이고 고여 있다. 평소 내가 원했던 고요함이 아닌, 고요는 심드렁하다. 복잡하게 얽힌 차와 집과 사람과 동물들이 그려내던 얼키설키한 그림들이 사라진 거리마다 후줄근하게 늘어진 삭은 고무줄 같은 적막이 매달려 있다. 서로 경쟁하듯 치솟던 고층건물들도 수직의 날카로운 눈빛을 거두고 눅눅하고 낮게 눈빛을 깔고 있다.

복잡하고 불편했던 세상마저 일순간 멈춘 거리. 서로에게 조금이라도 득이 되는 거리를 더는 계산하지 않아도 되는 거리. 아예 거리가 사라진 거리다. 이보다 기상천외한 신종이 또 있을까.

필요와 불필요에도 적절한 거리는 있다. 환상적인 조명 뒤에 가려진 소란과 난개발과 미세먼지와 초고층의 빌딩이 만든 돌풍은 필요와 불필요의 적절한 거리두기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의 거리가 사라진 거리에서도 거리두기는 필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가장 필요한 것일 수 있다. ‘거리가 사라진 거리’에서 새삼 ‘필요와 불필요의 적절한 거리’를 생각해본다.

사람의 훈기를 그리워하면서도 타산적인 거리두기를 하던 몹쓸 버릇을 반성하며 동백섬을 걷는다. 부딪치며 걷던 사람들 대신 어쩌다 만나는 사람들. 너무 드문드문해서 거리두기는 완벽하게 유지되고 있다. 변함없이 동백섬의 새들은 분주하게 날개를 부딪치면서도 서로의 거리를 잘 지키며 날고 있다. 누가 바라보지 않아도 동백은 상관하지 않고 서로의 거리를 잘 지키며 순리대로 피고 지고 또 피고 있다.

‘거리가 사라진 거리’에도 더디지만 봄은 오고 있다. 그래도 어쩌겠느냐고 거리마다 팬지꽃을 심는다는 대구사람들을 떠올린다. 동백섬에는 앞 다투어 붉은 꽃을 피우는 동백꽃이 있어서, 명랑하게 아침을 여는 바다새들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머지않아 ‘거리가 사라진 거리’에서 서로의 안녕을 물어오는 환한 꽃들이 여기저기 무더기로 피어날 것이다.

어쩌면 우리에게 지금은, ‘불필요했던 거리’를 정리하고 ‘가장 필요한 거리’를 마련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시간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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