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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스 칼럼] 가을 전어錢魚

기사승인 2019.09.18  12:3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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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인환
     수필가
누구는 사람을 지하실에 가두어 놓고 자신은 세계적 거장이 되었다. 그런데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만든 게 송강호 뿐만 아니다. 그가 찾아 낸 또 다른 ‘기생충’, 그건 바로 나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한국 영화 100년사 초유의 경사라 온 매스컴이 요란할 때, 나도 송강호와 함께 화려한 대저택의 지하의 갇혔다.

아내의 연금이 아니라면 나는 한 푼도 없다. 눈치가 보이던 자식들 용돈도 이제 덥석덥석 받기에 이력이 났다. 기생충도 굼벵이처럼 땅속에서 오래 동안 근신하고 있으면 언젠가는 하늘을 날 수 있을까. 글 좀 쓴다고 그런 꿈을 꾼다면, 소도 웃을 일이다. 뭐 머릿속에 든 게 있어야지. 얄팍한 말장난질로 빈 깡통 소리만 요란할 뿐이다.

지난 주간에 옛 교회 친구 일곱이 부부 동반으로 통영 사량도에서 1박 했다. 한국 100대 명산 중 28위에 선정되었다는 옥류봉에도 올랐다. 저녁은 전어 회 잔치였다. 사량도 오는 길에 삼천포에 들러 팔딱거리는 싱싱한 횟감을 잔득 사왔다. 모두들 깨가 서 말이라 옆 사람 돌아보지도 않는다. 그걸 구경만 하고 있으려니 나에겐 지독한 고문 시간이다. 젓가락을 들다가도 아내의 서릿발 같은 눈총에 슬그머니 젓가락을 놓고 만다.

10 여 년 전, 우리 교회 K장로님이 점심 식사로 회덮밥을 잡수셨다. 분명이 회를 걷어냈지만, 나처럼 간질환을 앓던 장로님은 사흘을 넘기지 못하고 소천 하셨다. 비브리오 패혈증이다. 함께 식사했던 친지들은 두고두고 죄인을 면치 못했다.

흩어져 살다가 은퇴 후에 다시 결성된 모임이라 이래저래 살아온 이야기가 끝이 없다. 웃음꽃이 만발이다. 비록 머리털은 희끗거리지만 모두들 팔팔하다. 한 사람 한 사람 뜯어보아도 나만한 기생충은 없는 것 같다.

한 때 ‘구구팔팔 이삼사’란 말이 유행했었다. 구십 구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삼일만 앓고 죽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이다. 그러나 이 소원은 ‘구십 구세까지 팔팔하게 산다.’란 그 전제부터 만만찮다.

구십 구세까지 살기도 어렵지만 팔팔하게 살기는 더욱 어렵다. 우선 육신에 지병이 없어야 하고, 정신도 건강해야 한다. 충분한 경제력에 노후를 즐길 취미나 재능까지 있어야 ‘팔팔한 삶’이다. 주위에 속 썩이는 자식이나 친족이 있어도 안 된다. 그렇다면 나는 애당초 탈락이다.

무료급식소 앞에 노인들이 소란스럽다. 줄서기에 새치기를 한다고 눈알을 부라린다. 아무리 봐도 남는 것이 시간뿐일 것만 같은데, 고함칠 힘은 어디서 나나.

한 떼의 노인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지나간다. 선창에 따라 연방 구호도 외친다. 이 땡볕에 제 몸 가누기도 힘들 텐데 모두 대단하다. 저 연세에 신념일까, 애국심일까.

나는 곰곰이 생각한다. 내 노후가 ‘팔팔하게 살기’는 이미 글렀고, 내 힘으로는 죽을 때까지 한 마리 기생충을 면할 길이 없다. ‘애완용 기생충’이란 말은 들어본 적이 없으니, 살아서 누구에게 애완용도 될 수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나에게 최고의 애국애족은 무엇일까. 하늘에 별 따기 같은 몽상이 아니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내 맘을 눈치 챘는지 퇴직교사 친구에게서 카톡이 왔다. 문장이 거칠어 내가 나름대로 좀 다듬어 봤다.

‘가을 전어 회’ 절대 먹으면 안 됩니다.

오늘 신문을 보니 가을 전어가 나왔단다. 가슴이 덜컥했다. 장사꾼에게 돈(錢)이 되는 전어錢魚다. 그러나 간이 나쁜 사람에게는 순식간에 목숨을 앗아가는 저승사자다.

‘집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는 전어 회 맛을 나도 어지간히 즐겼다. 그 끔직한 일이 있기 전, 전어 먹으러 다대포까지 자주 갔었다. 다대포는 낙동강 장림 하수처리장과 만나는 곳이라 전어가 버글버글하던 곳이다. 전어는 깨끗한 물에서 사는 고기가 아니다. 떼를 지어 모이는 곳은 하수처리장같이 오염된 곳이다.

하나 뿐인 내 여동생이 세상을 떠났다. 전어 회를 먹고 채 하루도 넘기지 못했다. 49살, 아직 할 일을 산더미같이 남겨두고. 그날 저녁 고신대 응급실, 그 밤을 잊을 수 없다. 고신대 감염내과 과장의 말이 지금도 생생하다.

비브리오 패혈증, 수혈도 의미가 없고 치료 방법도 없다. 내일을 절대 넘길 수 없으니 가족들 지금 바로 와서 얼굴 보라던 그 말, 나는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밤, 새벽이 오기도 전에 사랑하는 동생은 먼 길을 영영 떠나고 말았다.

내 동생은 낮에 전어 회를 먹고, 그날 오후에 발등에 회백색 물집이 생겼다. 물집은 서서히 무릎 쪽으로 허벅지까지 번져 올라왔다. 동아대 병원을 거쳐 고신대 병원 응급실에서 그날 밤을 넘기지 못했다.

간염이나 간질환이 있는 분들은 바닷물 수온이 낮아지는 10월 이후가 아니면 절대 드시면 안 된다. 비브리오 패혈증, 지금도 발병에서 사망까지 사흘을 절대 넘긴 적이 없다는 사실, 꼭 기억하시길!

내일 해가 뜨면 몸부터 깨끗이 씻고, 가만히 다대포 쪽으로 가봐야겠다. 오래 전 학생들을 데리고 해수욕장 쓰레기 줍기 봉사를 했던, 그 모래사장을 밟고 천천히 몰운대까지 가야지. 그때 그 녀석들도 이제 쉰 살은 넘은 것 같다. 되돌아 걸어 나오며 맘에 드는 횟집이 눈에 띄면, 전어 회 한 접시를 시키리라. 경건한 마음으로 한참 바라보다가, 이윽고 한 점 한 점 그 맛을 음미하리라.

참, 그러다가 ‘전어 회’ 시킨다는 게, 그만 ‘전어구이’를 시켜버리면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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